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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치규 Chigyu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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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2011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 졸업

1999 성신대학원 석사 졸업

199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Artist

Resilience

‘회복탄력성’, 아주 재밌는 말을 찾아냈다. 나의 작업을 대변하여 말하기에 아주 적당한 말이다. 이 말은 물질의 특성을 묘사하기 위해 쓰이기도 하고, 심리학에서는 이 물리학의 용어를 정신에 빗대어 쓰곤 한다. 이른바 심리적 회복탄력성이다. 물질에 적용될 때는 그 물질이 어떤 변형의 힘을 받을 때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려는 힘을 말한다. 심리적으로 사용될 때는 정신의 스트레스 대항력, 삶의 본원적 의지와 같은 의미로 쓰는가 보다. 밑바닥에 떨어져서도 우리는 다시 재기의 희망을 본다. 심지어 물도 자리를 내주었던 것이 떠나면 다시 그곳을 채운다. 부정과 해체, 억압의 힘은 꼭 그만큼의 반대급부의 힘, 즉 긍정, 생성, 자유의 힘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일종의 리듬이다. 이는 자연의 한 진리이다. 부정이 일방적인 힘이라면 회복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부정은 꼭 그만큼의 긍정의 잠재력을 축적시킨다. 이것은 힘의 진리이다. 궁극적으로 나에게 있어 욕망은 위기나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 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잠재된 에너지로서의 긍정의 힘, 즉 회복탄력성이 있음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함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힘은 힘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힘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오늘날 예술은 더 이상 그것이 그것 자체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궁금해 할 필요도 없다. 나 역시 그렇게 만들지 않는다. 보는 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시사 받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상대론자는 아니지만, 관객 없이는 작품도 없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항상 관객이 어떻게 느낄지의 문제다. 나 역시 관객이다. 관객은 느끼고 사유한다. 설치는 온몸으로 느끼고 생각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 때문에 개인전을 열 때면 항상 설치작업을 메인으로 한다. 존재하는 것은 사유한다. 작품은 조각가로서의 사유, 나와 작품존재 사이에 놓인 시간의 단면이다. 이제 나는 이 조각품을 더 이상 이상으로서 바라보지 않으며, 그것을 어떤 식으로건 내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을 넘을 필요는 없다. 전유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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